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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도상국 보건의료개발협력의 경험 : 안보건과 보편적 눈 건강 / 윤 상 철
 

고민의 시작 -
단순한 접근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2009년 6월 에티오피아에 국제협력의사로 처음 발을 내딛으면서 필자는 처음으로 개발도상국의 보건 의료를 깊게 접하게 되었다. 전공의 시절 이런저런 경로로 1년에 한번 뿐인 본인의 휴가를 써가며 개발도상국에 백내장 수술 캠프를 떠나는 미담을 듣곤 했으나 필자가 직접 참여해 본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개발도상국 의료 한가운데 들어가게 된 것은 인생에 있어 큰 변환점이 되었다.
비행기로 약 17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게 느낄 수 있는 그 시간을 지나 에티오피아에서 느낀 보건의료의 문제는 알면 알수록 새로운 문제였다. 처음으로 지방으로 나간 아웃리치 프로그램에서 만난 환자는 시간거리로 5시간, 비용거리로는 1만원 (한화 환산)을 넘어오지 못하여 백내장으로 실명상태에 이른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환자에게 단순히 무료 수술을 제시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환자가 의료기관에 오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수술비용이 없어서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환자가 적절한 보건의료서비스를 받기에는 수술비 문제도 있지만 다른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있다. 2009년 대한민국에서는 서서히 백내장이 실명의 원인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치료가 보편화되어 있었으나, 비행기로 17시간 떨어진 곳에서는 그 병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실명에 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간의 단기 봉사팀의 결과 : 안과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에서 백내장 수술을 제공해 주는 사례들은 종종 있어왔다. 다만, 이 소중한 기회가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갔는지 다시 한 번 냉정하게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는 직접적인 금전적 문제(수술비)만이 백내장 수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장애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실상 무료 백내장 수술을 시행하면 예상외로 환자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지는 않는다. 이는 백내장 수술의 이면에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기존 연구들을 살펴보면 무료 백내장 수술을 제공했을 때 실제 수술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비율은 21~33%에 불과하다는 보고가 있다.[1] 많은 보고서에서는 그 이유 중 하나를 직접적인 수술비와 더불어 병원까지 오는데 사용되는 간접적인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실제 환자들에게 교통비를 제공하더라도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백내장 수술의 경우 환자가 먼 거리를 수술을 위해 홀로 병원에 찾아올 수 없기 때문에, 함께 오는 가족 및 친지들의 교통비까지 고려해야 하며, 그들이 입원 기간, 그리고 수술 후 추적 관찰기간 동안 생업을 포기하는 대가로 발생하는 기회비용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이들은 워낙 극단적인 빈곤 상태에서 놓여 있다 보니 2~3일 정도의 일당을 포기하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는 이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무료 백내장 수술의 혜택을 누렸던 사람들의 대다수는 해당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위치한 비교적 발전된 도시에 사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비용을 내고도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해외 단기 봉사 팀 등의 무료 백내장 수술 기간을 기다렸다가 수술을 받은 것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는 한정된 기회인 무료 백내장 수술의 혜택이 절실한 지방에 사는 빈곤한 사람들에게 제공될 기회가 줄어드는 상황을 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단기 봉사팀의 방문은 제한적인 기간으로 인해 수혜자수의 한계가 분명하며 오히려 현지 의료인들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현지 안과 의료 시스템의 약화를 가져오기도 한다.[2] 이러한 것들이 백내장 수술이 국제 보건 영역에서 가지는 고유의 가치를 퇴색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의료 접근성, 그리고 ABCDEF

에티오피아에서 처음으로 본 ‘의료 접근성’이 낮은 환경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소위 ‘고소득국가’에 알려질 때에는 외부로부터 도움이 많이 필요한 상황으로 해석되어 있다. 에티오피아 근무하는 동안 만났던 수많은 의료봉사팀들은 의료 인력이 부족하고 필요한 치료를 못 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곳을 방문하였으며, 헌신된 봉사를 수행하고 떠났다. 그러나 그들의 ‘선한 목적’과는 달리 그곳의 의료접근성은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그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었다.

‘의료 접근성’과 관련한 장애요소들은 다음과 같은 ABCDEF로 정리할 수 있다.[3]
- 의료에 대한 무지, 치료 가능한 질환인지 알지 못함 (Lack of Awareness)
- 치료에 대한 부족한 믿음 (Belief)
- 비용 (Cost)
- 거리 (Distance)
- 주술 등 검증되지 않은 대안적 치료에 대한 쉬운 접근 (Easier Access to Alternative)
- 치료에 대한 두려움 (Fear)

의료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고소득국가에서는 이러한 장애물들을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개발도상국에서는 이 모든 요소들이 도처에 만연해 있으며, 환경에 따라 강하게 작용하는 장애물이 달라질 수도 있다. 결국 국제 보건학에서는 현장의 문제 분석을 통해 어떠한 장애가 현지의 ‘의료 접근성’을 저해하는지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접근을 취한다.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 인식 – 기존 의료시스템에 통합된 새로운 안보건 접근 전략

국제실명예방기구 (International Agency of Prevention of Blindness, IAPB) 및 세계보건기구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실명이 중요한 보건 문제임을 인식하고 점점 증가하고 있는 고령화와 만성질환 유병률을 고려할 때, 전 세계적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에 비해 급증하고 있는 보건의료 비용에 대한 부담은 현재까지 지속해온 여러 보건의료 활동에 대해 효율성과 효과성을 더욱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위해 2013년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 WHA)에서는 보편적 안보건 (Universal Eye Health, UEH)를 이야기 하면서 다음과 같은 발전 방향을 제시하였다.

1. 포괄적 안보건 : 건강 증진, 실명 예방, 치료 그리고 시각 재활까지 안보건의 모든 분야 서비스를 포괄적 서비스 포괄적으로 제공하여 치료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2. 의료 시스템에 통합된 안보건 : 모자보건이나 감염성질환 등 다른 모든 분야의 보건의료와 마찬가지로 안보건도 지금까지의 수직적인 중재의 모습에서 탈피해 전체적인 보건의료서비스의 시스템적인 통합이 선행되어야 한다.

3.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안과의료 서비스 : 사회적 약자들도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안과의료 서비스로, 이는 보편적 건강보장과 맥락을 함께하며 강력한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고자 하는 보건의료의 발전 목표이다.

4. 진료비로 인해 안보건 서비스에 접근성이 차단되어서는 안 된다.

즉, 이러한 변화들은 더 효과적인 안보건을 위한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대다수 국가에서 일차보건의료에 안보건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채 별개의 시스템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과의사가 충분한 수로 존재한다면 다소의 비효율이 있어도 다른 부분의 효율적 접근으로 문제를 상쇄할 수 있겠으나,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안과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일차의료기관에서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고 이는 곧 실명률의 증가로 이어졌다. 그러나 상당수의 안과질환의 경우 기존 의료시스템과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이 많으며 안과 전문인력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지역사회건강요원을 비롯한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인력들에게 기초 안과검진에 대한 교육 훈련을 하여 효과적인 안보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그림1)

개발도상국의 보건의료 환경은 항상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가장 많은 수혜자들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하므로, 기존과 다른 의료 시스템의 효과적으로 통합된 접근은 앞으로 실명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전 세계 WHO 모든 회원국들이 2020년까지 달성하고자 하는 VISION 2020 (2000년 기준 전 세계 실명률을 202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자는 실명예방 운동)이 허울뿐인 구호가 아닌 실효성 있는 목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혁신 기술의 도입
–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현실적 대안

보편적 안보건을 달성하기 위해 위에 언급된 발전방향을 따르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기반 한 지속가능한 안과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훈련된 인력과 장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있어왔다.

- 인력
지난 수 십 년 동안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많은 국제보건 전문기관들은 의료 인력을 양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안과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훈련된 인력들이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나는 두뇌유출 등의 문제로 인해 충분한 의료 인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비단 한두 국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3년 연구에 의하면 전 세계 실명률과 안과전문의의 분포는 역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4]

Inverse Care Law로 불리는 지역별 의료 인력의 분포도 차이도 문제이다. 지난 새천년개발목표 기간 동안 조산사, 간호사 등 많은 의료 인력에 대한 역량강화를 시행해 왔다. 그리고 그 결과 의료인들의 수는 이전에 비해 많이 증가하였고 역량 또한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훈련으로 역량이 증대된 의료 인력들이 더 나은 근무 환경을 찾아 대도시로 유입되는 현상이 발생하여 의료 취약지에 근무하는 의료인의 수는 더 줄어들게 되었고 이는 국내두뇌유출 (Domestic brain drainage)라는 새로운 문제로 다가오게 되었다.
이러한 점들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내 거주하며 이동을 하지 않는 지역사회건강요원들을 활용한 안보건 사업 그리고 기존 의료체계 안에 포함되면서 지역 보건소의 기본 활동 가운데 편입되는 안과 검진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기존의 수직적 체계를 이루며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안과 의료서비스에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말라위에서 시행한 지역사회건강요원 (HSA)들에게 3일간 기본 안과검진에 대한 교육을 한뒤 백내장, 트라코마 등 주요 안과질환에 대한 검진 및 전원을 시행해본 결과, 방문 진료시 안과 문제로 전원한 비율이 6.24%에서 19.97%로 약 3배가량 증가함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효과적인 실명예방사업을 지역사회 안에 있는 인력들과 보건의료시스템을 통해 수행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5]
또한, 장비 측면에서도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안과 장비들은 대부분 고가이며 이를 지역 보건소 수준에서 구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최근 나온 스마트폰에 렌즈를 달아 지역사회 중심 안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도들이 되고 있다(그림 3).

아직, 시범사업 단계이나 안과 보건 서비스가 향후 발전해 나갈 방향이라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 하고 있다.[6] 또한, 안과와 관련한 의료정보를 모으고 안저이미지 판독에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시도들을 통해 안과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더욱 넓혀가는 변화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의 국제보건은 단순한 의료시설건축, 기자재지원에서 파트너 국가의 요구 및 해당국내 타 원조기구와의 조화를 고려하여 상황에 맞는 현지의료체계 구축, 정보체계 강화 등 더욱 체계적이고 포괄적이며 지속가능한 방식의 원조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과 분야의 국제보건도 마찬가지로 단기 백내장 수술을 시행하고 돌아오는 봉사 활동에서 현지의 지속가능하며 지역사회에서 통합된 방식의 보건사업으로 새롭게 구축되고 있다. 처음에는 변화가 더디어 보여도 궁극적으로 실명률을 꾸준히 낮출 수 있는 안보건 활동의 방식이 국제보건에 있어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되길 희망한다.

 
참고문헌
[1] Finger RP. Cataracts in India: current situation, access, and barriers to services over time. Ophthalmic Epidemiol. 2007 May-Jun;14(3):112-8.
[2] Edward O'Neil Jr.,A Practical Guide to Global Health Servic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2006, 24.
[3] Brillant GE et al. Social determinants of cataract surgery utilization in south India. The Operations Research Group. Arch Ophthalmol. 1991 Apr;109(4):584-9.
[4] Bastawrous A, Hennig BD. The global inverse care lwa: a distorted map of blindness. Br J Ophthalmol October 2012 Vol.96 No.10 1357-58.
[5] Project BOM. 2018년 말라위 실명예방사업 2차년도 보고서.
[6] IAPB. 10th General Assembly. Innovation in eye health.

 

 

 

작성일 :

 201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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