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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화학물질 노출에 따른 국민건강 문제에 대한 보건학적 고찰 / 조 용 민
 
<편집자 주> 최근 임산부의 날을 맞아 한 병원 산부인과에서 임산부를 대상으로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인식조사를 한 결과, 임산부 응답자의 99.2%가 생활속 화학물질 노출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다. 가습기살균제, 치약 등에서 유해한 물질이 검출됨에 따라, 임산부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생활화학물질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생활화학물질에 대한 국민의 관심사가 높아졌기에, 보건학적으로 생활화학물질이 국민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점검하고자 한다.
 

들어가며

현대인들은 수많은 종류의 화학제품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생존과 편의를 위한 수많은 제품, 사용되는 것과 버려지는 것들, 우리가 머무는 공간, 심지어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생활화학물질’이라는 표현은 생활 속에서 일반인구집단에게 노출될 수 있는 종류의 화학물질, 즉 최종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생활화학제품의 구성성분이 되는 화학물질을 의미한다. 최종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생활화학물질 노출은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그 영향이 즉각 나타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오늘날 생활제품으로 인한 위해영향의 확산은 감염병이 가지는 그것에 비하여 보다 위협적이고 치명적일 수 있다.
제품 구입 시 각별히 주의하면 안전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제품을 사는 것이지 그 안에 있는 성분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어느 성분이 안전하고 어느 성분이 위험한가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며, ‘의도적’인 화학물질 노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화학제품과 그 구성성분이 가지는 유해성 정보에 대한 소통이 요구되며, 화학물질과 제품이 가지는 유해성에 대한 명확한 규명이 필요하다.
본 논고에서는 국민건강이라는 측면에서 생활화학제품이 가지는 보건학적 의미에 대하여 고찰하고 이와 관련한 몇 가지 이슈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생활화학물질에 대한 두려움

최근 일반 소비자들의 생활화학물질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들이나 예비 엄마들에게 있어 이러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이러한 두려움은 위험에 대한 불확실성 및 통제 가능성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즉, 사람들은 앞으로 생겨날 위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 더 큰 두려움을 가지게 되며 이러한 위험을 스스로 극복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 두려움은 불만과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활화학제품을 통한 화학물질의 노출 위험에 대하여 최근 언론보도가 증가하고,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같은 국가적 참사가 알려짐에 따라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지게 되었다. 이러한 두려움은 화학물질 위험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의식을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해소할 수단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두려움이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제품이 어떤 유해성을 가지고 있고, 향후 어떤 피해가 예상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정보제공 소통 창구는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화학제품과 그 구성성분이 가지는 유해성 정보에 대한 소통이 요구되며, 화학물질과 제품이 가지는 유해성에 대한 명확한 규명이 필요하다.


화학물질 유해성 정보

화학물질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그 물질이 가진 유해성에 근거한다. 어느 화학물질의 유해성이 높다는 것은 그 화학물질에 노출될 경우 잠재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영향이 보다 부정적이고 치명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화학물질 A가 발암물질로 확인되었다면 인체 혹은 동물실험을 통하여 화학물질 A가 잠재적으로 생체에 암을 유발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는 의미이다. 화학물질의 발암성에 대한 근거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 (IARC;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에서 공표하는 발암물질 목록이다.
아래의 표에서, Group 1은 인체에서, Group 2A/B는 동물실험을 통하여 발암성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가 확보된 인자들이다. 그렇다면 상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200종 외의 화학물질은 암을 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발암성이 인정된 Group 1-2의 200여종 물질들과, 암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어려운 Group 3의 505종, 암과 무관한 것으로 여겨지는 Group 4의 1종 외에도 세상에는 수 만종의 화학물질이 존재한다. 상기에 목록화 된 약 1,000종 외의 화학물질은 암을 일으키지 않는 화학물질이 아니라 발암성 여부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물질이라는 의미이다.

암이 아닌 다른 형태의 인체 작용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어떤 물질은 암을 유발하지는 않지만 기형아를 출산할 수 있는 위험을 높일 수 있고, 간이나 신장과 같은 장기의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 어떤 물질은 노출 후 영향이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어떤 물질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또한 어떤 물질은 특정한 다른 물질과 결합하여 치명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도 있다.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규명하는 일은 독성학자들의 영원한 숙제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화학물질의 독성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독성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접촉하게 되는 화학제품은 한 가지 성분으로 구성된 것 보다는 수십 또는 수백 가지의 화학물질로 구성된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은 대부분 여러 성분이 함유된 혼합물이며, 혼합물의 유해성은 그 혼합물을 구성하는 단일성분들에 의하여 결정되지만 제품의 구성성분 정보를 제조업체에서 공개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화학물질의 유해성은 ‘잠재적’인 영향을 의미한다. 잠재적이라는 표현은 화학물질로 인한 부정적 영향이 생겨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를 결정하는 것이 ‘노출’이다. 아무리 유해성이 높은 요인이라도 노출이 생겨나지 않으면 어떤 영향도 일으키지 않는다.
가습기살균제를 비롯하여 치약, 화장품 등 위생제품과 방향제, 세정제 등에 살생물제 등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화학물질이 함유되었다는 조사 결과가 매체를 통하여 전해지며 큰 파장을 주었다. 이에 따라 환경부를 비롯한 관련부처에서는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며 생활화학제품에 함유되는 물질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고, 제품의 사용으로 인한 위해성평가 체계를 제도적으로 강화하게 되었다.
유해성에 대한 관리 못지않게 노출에 대한 관리와 고려는 매우 중요하다. 가습기살균제를 예로 들면, 가습기살균제라는 제품 자체는 액상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사용자들에게는 에어로졸의 형태로 노출된다. 여름철과 겨울철 습도의 변화가 상당한 우리나라에서 가습기라는 제품은 일반적으로 겨울철에만 쓰여지는 제품이다. 가습기의 고인 물에 세균이 번식한다는 우려와 함께 가습기살균제가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난방 때문에 환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겨울철, 그것도 주로 방안에서 오랜 시간동안 머무는 동안, 특히 잠자리에 가습기가 많이 사용되었고 주된 노출대상은 위생에 민감한 어린아이와 임산부였다. 즉, 환기가 되지 않는 8-10시간 혹은 그 이상 동안 영유아와 임산부들이 방안에서 가습기살균제 증기를 한 계절 가까이 흡입하였다면 노출로 인한 건강영향의 개연성은 확실하다. 화학물질이 가지는 유해성은 그 성상에 따라, 노출량과 양상에 따라, 대상 집단의 민감성에 따라 가벼워질 수도, 치명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라는 제품이 시장에서 판매되고 사용되는 동안 이러한 노출 위험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독성학의 기초를 확립한 파라켈수스(Para- celsus, 1493 – 1541)가 말한 대로 “모든 것들은 독성을 가지며, 그 양이 독성을 결정한다(All things are poisons, for there is nothing without poisonous qualities. It is only the dose which makes a thing poison)”는 전제 하에, 유해성에 대한 관리만으로는 완전할 수 없으며 결국 노출에 대한 관리가 중요하다.


알 권리와 보호해야 할 의무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관리가 강화됨에 따라 인체 건강 우려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제품군을 중심으로 함유되어서는 안되는 물질,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물질, 허가 혹은 보고가 필요한 물질 등을 제도화하였다. 기우일 수 있겠으나, 자칫 이것이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A라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에서 B라는 화학물질이 금지물질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금지물질이 아닌 C라는 물질을 함유하여 제품을 만든다고 하였을 때, 과연 C라는 물질은 안전한가에 대한 의문이 남게 된다. 물론 현행 제도에서는 사전 위해성 평가를 통하여 제품의 위해성을 제품 출시 전에 예측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오늘날 화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독성학의 발전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만일 C라는 화학물질로 인하여 부정적 건강영향이 생겨날 수 있는 개연성 증거가 확보될 시점은 이미 A라는 제품이 시장에 보급되고 난 이후일 것이다. 이 경우 기업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의약품이나 농약 등과 마찬가지로 화학제품이 가지는 유해성과 위험성에 대하여 소비자에게 충분히 알려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 소비자는 제품이 가지는 유해성에 대하여 알 권리를 가지며, 소비자가 제품의 유해성을 쉽게 인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십 종의 생활화학제품을 사용하거나 구입하는 소비자가 일일이 모든 제품의 유해성 정보를 확인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일부 생활화학제품에 대하여 제품의 유해성 정보를 표시하여 알려야 하는 제도에 대하여 ‘우리는 법에서 정한 바에 따라 유해성을 충분히 알렸으니 이 제품으로 인한 피해의 책임은 소비자에게 있다’는 식으로 해석한다면 너무 지나친 편향일까.
아무 우려 없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던 소비자들은 이 제품이 안전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제품을 구입한 것이다. 이 믿음은 근래에 불신과 의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안전한 사회는 신뢰가 바탕이 되는 사회일 것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기업만의 책임도, 정부만의 책임도 아니다.


맺으며

지난 수십 년간 보건학자들은 이른바 쓸데없는 걱정과 잔소리를 해 왔다. 농업 생산성 증대에 매우 큰 기여를 한 농약의 사용이 환경과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주장한 학자도 있고, 인류가 수백 년간 피워 온 담배가 인체에 해롭다고 주장한 학자들도 있다. 탄 고기가 암을 일으킨다고 보고한 학자들도 있다. 이러한 주장이 처음 나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필요한 우려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이러한 것들은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류가 대부분의 생활을 화학제품에 의존하는 만큼, 화학제품으로 인한 건강영향 역시 늘어나고 다양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아직까지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건강영향이 단일 원인보다는 복합적인 원인과 경로를 가지게 되고 노출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걸린 이후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쉽게 찾기 어려운 것이다. 생활화학제품으로 인한 건강영향은 이미 어디에선가 진행되고 있다.

 

 

 

 

작성일 :

 20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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