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책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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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과실 의료사고 보상 재원 문제 – 외국 사례를 참고하여 / 배 덕 수
 
<편집자 주>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 조항 등이 포함된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소위 신해철법)이 2016년 11월 30일 시행되었다. 이에 지난 5월, 19대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기까지의 경과와 주요내용 등을 살펴봄으로써 법 개정이 우리 사회에 남긴 정책적 함의를 고찰한다. 나아가 법 개정시 검토과제로 남겨졌던 숙제들이 하위법령 개정 과정 등을 통해 얼마나 합리적으로 해결되었는지 개괄한다. 결국 이를 통해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하여 상 호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의료분쟁조정법의 바람직한 미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본다.
 

1.서론

지난 십여 년간 산부인과학회는 의사협회와 협조하여 환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안정적인 분만 환경의 조성을 목적으로, 분만 관련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따른 보상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 유관 정부 기관과 많은 논의를 진행한 결과, 의료분쟁조정법 중 산과 무과실제도가 탄생하였다. 이러한 취지에 맞게 의료분쟁조정법 원안에는 산과 무과실 보상제도에 대한 분담금의 주체는 ‘국가’로 명시되어 있었으나, 이 법률안이 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소위 구성 논의 후 ‘보건의료개설자’가 분담의 주체로 추가되었고, 결국 시행령에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의 재원 마련에 ‘분만을 담당하는 산부인과 의사’가 50%를 분담하며, 대상 질환으로 모성사망, 뇌성마비뿐만 아니라, 신생아 사망이 포함되었다. 이 최종 개정안이 2011년 11월 입법 예고되자,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심하게 반발하며 대한산부인과학회와 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하였고, 더불어 대한신생아학회, 대한소아재활・발달의학회, 대한산부인과 전공의협의회, 전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연합에서 잇달아 성명을 발표하면서, 이러한 제도가 분만 기피현상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반대하였다. 이러한 강렬한 저항을 의식한 정부는 실제로 법 시행에서 산부인과 의사의 분담금의 비율을 30%로 조정하였으며 2013년 4월부터 시행 중이다. 또한, 2015년 6월에는 시행령 개정을 통하여 ‘태아사망’이 보상대상에 신규로 포함되었다.
의료계에서는 분만과 관련된 무과실 의료사고(질병)보상제도의 재원 마련에 있어서 분만을 담당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은 금액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며, ‘분만이라는 의료 행위 자체에 원죄를 씌우는 격’이라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이며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분만과 관련된 무과실 의료사고(질병)보상제도는 사회안전망으로 국가는 사회안전망의 확충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서 분만 관련 무과실 의료보상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과 대만에서 유사 제도를 어떻게 시행하고 있으며 특히 재원을 어떻게 확보하고 있는지 소개하려 한다.


2.본론

1) 일본의 예

일본 산부인과 의료계의 상황을 살펴보면,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일본에서도 산부인과에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요소들이 많아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무엇보다도 여성 산부인과 전문의가 많아지면서 육아와 출산으로 휴직하거나 주간 근무만 선호하면서 야간분만을 담당할 당직의가 부족해 졌으며, 분만을 기피하는 현상이 악화되면서 1994년 대비 2004년 약 25%의 분만병원이 문을 닫고, 그나마 문을 열고 있어도 야간 분만이 불가능한 병원들이 많아졌다. 한국 역시 유사한 과정을 겪고 있는데 여자 전공의 비율이 90% (그림 1), 10년간 분만실 폐쇄율이 50%, 분만수가가 일본의 1/10 수준 등 일본보다도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

일본산부인과학회에서는 어려운 의료 환경을 보다 구체적으로 풀어가기 위해 「Obstetric and Gynecologic Medical Care System Task Force」를 구성, 한해 100만 건의 분만(우리나라는 한해 42만 건 정도)을 감당하고 줄어든 남성 산부인과 의사 수와 이로 인해 부족한 야간 당직인력 수를 감안하면 20년간 매년 신규 전공의 500명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Project 500, grand design 2010”을 발표했다.(60세 이하 산부인과 의사 10,000 명을 확보, 의사 1 인당 연간 분만 100건만 담당하도록 해 업무량을 줄여 분만을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는 계획. 한국 실정에서는 산부인과 의사 한 명이 연간 100건이면 운영 불가능한 수가이나, 일본 수가로는 가능)
일본산부인과학회에서도 보다 실질적인 개선 (의료분쟁조정기구 마련, 열악한 환경에 처한 산부인과 의사들에 대한 지원 등)을 위해 정부의 여러 부처(후생노동성, 재무부)와 국회에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일본 정부는 2006년 이후 산부인과에 대한 대규모 지원 예산을 확보하게 되었다(매년 연간 2,100억 엔). 일본 정부는 산부인과 의료현실의 개선을 위해 이 예산을 다음과 같은 항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결과 산부인과 신규 전공의 확보는 급격히 상승하였다(그림 2).
ⅰ) 산모당 출산지원금: 39만 엔 × 1,000,000 분만/년 = 900억 엔
ⅱ) 산과 무과실 보상제도: 3만 엔 × 1,000,000 분만건수 = 300억 엔
ⅲ) 산전관리비용 지원: 700억 엔
ⅳ) 고위험 산모 의료비 지원: 200억 엔
ⅴ)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분만 건당 인센티브 지원: 70억 엔

이와 같이 일본에서는 산과무과실 보상제도에 300억 엔, 즉 한화로 3,000억 원이 100% 정부의 예산으로 집행된다. 결국, 일본 정부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을 기피하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의료소송이라는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의료 과정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밝히기 어려운 뇌성마비에 대해 과실 유무와 상관없이 보상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일본 정부에서는 2006년 뇌성마비 환아의 경우 이러한 “산과 무과실 보상제도 (No fault compensation)”제도를 시행하기로 결정, 3년간의 준비 끝에 2009년부터 시행하게 되었다. 즉, 이 제도의 취지는 분만과 연관된 의료사고로 인한 분쟁 시 의사와 환자의 피해와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분만 후 뇌성마비로 진단된 환아의 산모 측에 인과관계와 상관없이 (분만과 뇌성마비의 연관성을 생물학적으로 규명하기 상당히 어려우므로) 3,000만 엔 (한화 약 3억 원)을 정부가 보상해주는 것이다. 구체적인 지급방식으로는 총 3,000만 엔에서 기초보육비 600만 엔을 우선 지급하고 2,400만 엔은 보육비용으로 매년 120만 엔씩 정기적으로 20회에 걸쳐 분할 지급한다. 산모는 이 제도 가입을 위해 분만 병원에 3만 엔을 지불하게 되는데, 이는 정부로부터 받는 출산보조금 39만엔 이외의 추가 보조금으로, 산모는 총 42만 엔을 정부로부터 받게 된다. 2016년 7월 기준으로 일본의 총 3,270개소의 분만시설 중 99.9%가 이 제도에 가입되어 있다(참고로 우리나라의 경우 2014년 기준 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은 675개소에 불과하였다). 일본의 산과무과실 보상제도의 보상조건은 뇌성마비 환아의 분만 시 산모가 임신 33주 이상이며 출생 시 태아체중이 2,000g 이상인 경우로 제한하였으나 2015년에 32주 미만, 1,400g 이상인 경우로 개정하여 보상제도의 대상을 확대한 바 있다.


2) 대만의 예

분만기피와 산부인과 지원의 감소는 일본뿐만 아니라 대만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의료소송의 위험성과 높은 노동 강도로 인하여 대만에서도 산부인과는 대표적인 전공 기피과로 2001~2011년까지 약 10여 년 동안 실제 전공의 지원율은 평균 60%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분만기피 현상의 심각성을 인식한 대만의 정부는 2012년부터 3년간 산과 무과실 보상제도로 pilot 프로그램을 시행을 결정하게 된다. 대만은 지난 3년 동안 이 무과실 보상제도를 통하여 174가족에게 총 NT$ 170,000,000(한화 약 60억 원)을 지급하였고, 이러한 비용은 대만 보건복지부 의료발전예산기금(Health Ministry's medical development budget)에서 100% 지급되었다. 대만의 보건복지부는 위와 같은 산과 무과실 보상제도의 pilot 프로그램을 도입함으로써 분만 관련 의료 소송의 빈도를 약 70%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보도하였다. 또한, 과거 의료소송의 두려움으로 산부인과의 지원을 어렵게 느끼는 경우가 많아 유능한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러한 산과 무과실 보상 제도가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 향상에 도움이 되어 2012년에는 74%에 불과했던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이 2015년에는 94%로 높아졌다고 전했다. 결국, 대만 정부는 산과무과실 보상에 대한 비용을 정부가 100% 지불하는 법안을 2015년 10월 승인하였고 국회를 최종 통과하여 2016년 6월 30일부터 시행 중이다.
대만의 산과 무과실 보상제도의 구체적인 대상 기준 및 보상범위는 다음과 같다. 즉, 분만과정 중에 예측하지 못한 신생아 사망에 대해서 NT$ 300,000(한화 약 1,100만 원)을, 모성사망에 대해서 NT$ 2,000,000(한화 약 7100만 원), 분만 관련 예측할 수 없는 사고로 신생아 또는 산모에게 장애가 남은 경우 NT$ 1,500,000(한화 약 5,300만 원)을 100% 정부 예산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이러한 무과실 보상제도는 신생아의 경우 적어도 33주 이후에 분만한 경우에 해당하며, 모성사망의 경우는 양수색전증 또는 산후출혈과 같이 예측할 수 없었던 경우 등을 대상으로 하지만, 과실이 있는 경우는 제외된다.


3. 결론


건강한 임신과 출산은 모든 여성과 그 가족들의 희망이며 기본적으로 생리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의학적인 관점에서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병적인 상황이 확률적으로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모성사망은 출생아 10만 명당 11명, 신생아 사망은 1,000명의 당 1.7명(2014년 기준, 통계청)으로 보고되었다. 한편, 뇌성마비는 국내 유병률에 대한 보고는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출생아 1,000명당 약 2명 정도로 발생한다고 한다[3]. 이처럼 임신과 출산에 관한 병적인 상황은 확률적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모성사망과 같이 매우 드문 질환일수록 미리 예측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의학적으로는 ‘불가항력적’으로 이해되는 상황도 산모와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의료사고’의 상황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아 갈등의 소지가 많고 의료소송의 빈도도 증가한다. 이러한 높은 의료소송의 위험성은 분만이라는 행위의 높은 노동의 강도와 더불어 의사가 분만을 기피하는 현상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함은 더 이상 설명의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출산 연령은 점점 증가하여 2015년 32.2세를 기록하였고, 35세 이상의 고령 산모의 비율은 23.8%를 차지하였다. 우리나라 산모의 평균 출산 연령은 미국보다 약 5.8세가 높다(2012년 기준). 또한, 출생아의 수는 매년 감소하여 2015년 약 43만 명 정도, 출산율 1.24명에 그쳤다.
높은 의료소송의 위험성은 분만이라는 행위의 높은 노동의 강도와 더불어 의사가 분만을 기피하는 현상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함은 더 이상 설명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정부가 안전한 분만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우선하여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수한 산부인과 의사인력의 확보가 최우선임이 자명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 일본 정부는 산과 무과실 보상제도에 연간 3,000억 원을 투여하고 있고 대만 정부는 pilot 프로그램에 60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연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분만 관련 산과무과실 보상제도 시행에 따른 예산은 제도 설계 당시 (2012년) 41.4억 원이었고, 이 중 30%인 12.4억 원을 의료기관이 부담하는 것으로 설계되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지금까지 산과 무과실 보상제도의 부담금 문제는 금전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여 왔다. 일본 정부의 지원은 차치하고서라도 pilot 프로그램에만 투자된 대만 정부 예산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금액을 가지고 정부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슷한 분만인프라 붕괴와 분만 기피를 경험한 일본과 대만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우리나라 정부에도 기대해 본다.

 

 

 

 

작성일 :

 20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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