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책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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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절차 자동개시에 대한 중환자 의사의 소고 / 홍 상 범
 
<편집자 주>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 조항 등이 포함된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소위 신해철법)이 2016년 11월 30일 시행되었다. 이에 지난 5월, 19대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기까지의 경과와 주요내용 등을 살펴봄으로써 법 개정이 우리 사회에 남긴 정책적 함의를 고찰한다. 나아가 법 개정시 검토과제로 남겨졌던 숙제들이 하위법령 개정 과정 등을 통해 얼마나 합리적으로 해결되었는지 개괄한다. 결국 이를 통해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하여 상 호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의료분쟁조정법의 바람직한 미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본다.
 

서론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등급 1급 중 의료분쟁 절차를 자동 개시토록 하고 있다. 환자단체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의료분쟁조정법 자동개시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가 크다. ‘의료사고 피해구제’는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만, 과잉진료/방어진료/진료기피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이에 의료현장의 현실과 해결방안에 관해서 기술하고자 한다.
중환자실에 관한 많은 법이 제정되고 있다. 나름대로 이유도 있고, 환자 권리의 증진도 필요하다. 하지만 법 자체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정말로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에서 나온 것인지,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 법이 적용되는 것이 준비되었는지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론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에 대해서 중환자실 의료진들에게 학회 차원의 설문 조사를 시행하였다. 중환자실 진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질문에 90%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했고, 10% 만이 현재와 차이가 없든지 혹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하였다.
의료인들이 이 법에 대해서 염려하는 이유를 질문하고 복수 응답을 허용하였다. ‘방어진료 증가’ 라고 답한 비율이 81%로 가장 높았고, ‘조정을 위한 진료 외 업무부담 증가’가 66%, ‘조정신청이 남발할 것이다’가 66%, ‘중증환자 진료과 전공의 기피’가 57%의 순서였다. ‘의료기관의 경제적 손실 증가’를 걱정하는 비율은 17%에 불과하였다.
왜 의료 현장은 이 법에 대해서 ‘중환자기피법’이라 부르면서까지 부정적일까?
먼저 의료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중증질환/응급질환/고난도 치료는 최선을 다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과실이 없는 ‘부정적 결과(사망, 의식불명, 장애)’의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심한 뇌출혈이나 뇌경색 환자는 사망을 피할 수 있더라도 무의식상태로 평생 병상에 누워 지내는 정도가 최상의 결과일 경우도 많다. 의학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최선의 과정을 탐구하는 과학이지, 행위의 결과까지 예측하거나 책임지는 학문이 아니다. 만약 택시 기사에게 정해진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면 환불하라고 한다면 안전한 운행이 가능할까?
둘째, 새로운 의료기술의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술은 학문적인 근거의 수준과 근거의 질이 충분히 높지 않아도 점차 많이 쓰임으로써 그 과정에서 과학적 근거가 확립된다. 그래서 의사 개개인의 판단이 중요하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표준치료로 확립되기도 하고, 근거 부족으로 퇴출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많은 중증 환자들이 에크모(ECMO, 체외순환막형산화) 치료를 받았다. 이 환자들의 약 40%는 사망하였다. 최선을 다한 이러한 치료의 경우도 결국 ‘사망’이라는 부정적 결과가 발생하면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에크모는 아직 근거의 수준과 질이 충분히 높지 않다. 새로운 의료기술이 표준치료로 확립되어 가는 이러한 과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누가 의료현장에서 새로운 기술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보겠다고 나설 수 있을까?
셋째,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환자와 면역저하자 등 중증질환환자가 많아지고 있다. 노인환자, 암환자, 면역저하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일반인 집단에 비하여 필연적으로 사망률과 중증장애 발생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넷째, 우리나라 의료의 특징과 중환자실의 수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평가결과 전국 12개 병원만이 1등급 중환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1등급 중환자실이 없는 지역도 있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 중환자실 1등급 기준은 선진 외국의 기준으로 평가하면 하위 등급에 속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대다수의 중환자실에는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가 배치되지 않았다. 대부분 전공의 중심으로 근무하는 체계이고, 특히 야간에 중환자의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의 등 전문인력을 갖춘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이들마저 다수의 중환자를 진료해야만 하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다섯째, 중증환자를 잘 치료할 수 있는 관련 정책의 지원이 미비하다. 우리나라는 의료기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진 의료서비스 체계와 관련 정책의 부재로 소수의 전문가가 다수의 중증환자를 돌보고 있으며, 중증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근래에 들어서야 응급의료체계, 외상의료체계 정비에 정부의 지원이 늘고 있으나, 중환자실은 여전히 사각지대이다. 보건복지부 내에 중환자실 정책을 담당하는 전담 부서조차도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분쟁조정이 증가하고 그에 따른 업무증가나 불필요한 갈등, 보호자의 불필요한 오해가 증가한다면, 중환자실 의료진은 생존 가능성이 높지 않은 중증 환자의 치료는 기피하고, 에크모와 같은 새로운 의료기술의 선택은 주저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열정페이로 일해 왔지만, 결과가 좋지 않다면 분쟁조정과 무과실배상까지 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젊은 의사들이 중증환자들이 많은 전공을 선택하려고 할까?
아직 현대 의학에서도 중증환자의 치료 결정에는 담당 의사의 경험과 주관적인 판단이 많이 요구된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복잡한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내릴 수 있어야 하며, 수없이 많은 표준의료지침과 해마다 갱신되거나 새로운 과학적 근거들이 수도 없이 쏟아지고 있다. 한 번이라도 불필요한 분쟁을 경험한 의사는 조정결과를 떠나 위험 부담을 갖는 치료를 기피하고 환자 및 보호자와 건강한 신뢰관계를 쌓기 위한 노력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의료인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스트레스와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고 싶은 것인데 그 앞에 사회적 ‘책임감’과 ‘사명감’만 강조하는 것은 적절한 해결책이 아닐 것이다.
의료의 특수성과 우리의 의료환경 말고도 법안의 문제도 짚어보고자 한다.
현재의 개정안은 ‘안정적 진료환경 조성’이라는 법률안의 원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 법률안이 과거와 다르게 신청인과 피신청인 사이의 형평성을 보장하고 있지 않으며, 무과실보상, 대불제 등에서 합리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개정안은 조정중재 개시율이 낮은 원인과 해결책을 명확하게 분석하지 않은 채 그 책임을 의사와 의료기관에게 부담시키는 전제로 개정이 이루어졌다.
요약하면 개정안으로 인하여 진료현장에서는 과잉진료/방어진료/진료기피가 예상되고, 불필요한(과실이 없음에도) 고의적인 조정신청이 남발하여도 이를 견제할 방법이 부족하고, 이로 인하여 현장의 의료진은 진료 외 업무(중재원 제출 소견서 작성)부담이 증가한다. 이렇게 된다면 의료진은 중증/응급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없고, 중증환자/응급환자/고난도 치료를 전담하는 진료과에 젊은 의사들의 지원이 감소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대한중환자의학회에서 제안한 대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안정적 진료환경 조성과 상호신뢰환경 구축을 위한 개선안과 관련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제도 악용 방지를 위한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 악의로 조정중재를 신청하는 신청인을 견제하고, 의료기관/의료진도 조정신청을 요청하거나 신고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셋째, 조정중재원의 객관성 및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 전문적인 판단을 위해 중재원에 상근 또는 자문 의사의 확충이 필수적이다.
넷째, 과실 없는 조정신청을 중재개시 전에 각하하는 제27조 3조 3항을 현실화해야 하겠다.
다섯째,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의 대불 및 구상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일본처럼 공적 중환자 기금 조성을 해서 이런 경우 지불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여섯째, 보건복지담당부서에서는 환자가 악화되면 의료 잘못이라는 잘못된 ‘의료사고’ 인식을 전환하기 위한 대국민 인식개선과 홍보를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낮은 조정중재 개시율에 대한 정확한 원인 분석을 통해서 근본적인 원인 및 대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결론


환자의 안전을 증진하고 예방 가능한 사망을 막고, 중증 장애를 최소화하는 것은 국민 모두를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법 시행은 다양하고 복잡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의료현장은 매우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어 한 가지 법률로 환자의 안전과 권리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어렵다.
법안의 원래 취지도 살리고, 우리나라 중증환자 치료체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의료계와 국민의 신뢰회복과 의료현장의 현실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마련이 선행되어야 하겠다.

 

 

 

 

작성일 :

 20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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